지난 8월, 테이블 토크에서는 ‘사람을 모으고 연결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주제로 일본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도쿄와 가나자와를 중심으로 아이, 노인, 장애인 등 구분 없이 각자가 주체성을 가지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커뮤니티 현장들을 방문했습니다. 그중 가장 마음에 깊이 남은 곳은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 ‘긴모쿠세이’인데요. 고령화·돌봄 공백 등 우리 사회 현안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나와 내 가족이 케어가 필요해지는 순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모토신이치로(麓 慎一郎) 소장님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진행된 긴모쿠세이 탐방기를 구독자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긴모쿠세이 우라야스(銀木犀 浦安)는 도쿄에서 강 하나만 건너면 바로 이어지는 조용한 도시 우라야스에 위치한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사회를 맞이한 일본에서는 돌봄이 필요해진 노인에게 요양시설 입소보다는 지역사회 거주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복지 및 주거 정책을 추진해 왔다. 2011년부터는 고령자의 주거 안정과 생활 지원을 위해 주거와 복지를 통합한 ‘서비스 제공 고령자주택’ 제도를 시행 중이다. 입주자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 설계가 적용된 주택에 거주하며 식사, 안부 확인, 외출 동행 등 일상적인 생활 지원과 함께 의료 및 개호 서비스를 필요에 따라 선택해 받을 수 있다. ‘긴모쿠세이 우라야스’는 주식회사 실버우드가 운영하는 12개 고령자 주택 중 하나로, 42개 호실에 총 44명의 고령자가 입주해 있다. (주)실버우드는 치매환자가 일상에서 겪는 인지적 어려움을 가상 체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VR 시뮬레이션 사업도 전개 중이라고 한다. 

도쿄 근교 우라야스시 내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긴모쿠세이 전경

안전한 요양 시설보다는 자유로운 주거 공간

외부인도 출입이 자유로운 친근하고 정겨운 느낌의 현관

긴모쿠세이의 운영 방식과 원칙을 설명 중인 후모토 신이치로 소장님

세대를 초월한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 공간

입구에 들어서면 있는 과자가게. 방과 후에 맞춰 매일 오후 세 시간가량 운영된다

“아이들과 고령자분들 간 교류는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과 마주치며 웃을 일도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밝은 에너지가 공간에 감돌게 된다. 아이들이 모이다 보니 부모들도 같이 드나들게 되면서 하루 출입하는 지역주민 수가 입주자 가족이나 직원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입주자도 지역민들과 교류하며 산책이나 쇼핑 등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으니, 이곳에 맡겨져 갇혀있다는 느낌 대신 내 집의 연장선쯤으로 생각하게 된다.”

입주자 중에는 젊은 시절부터 수십 년간 대중목욕탕 카운터를 담당했던 할머니가 계셨는데, 가족과 함께 살다 혼자 입주하시게 되어 처음에는 외톨이처럼 방에만 틀어박혀 계셨다고 한다. 어떻게 도와드릴까 고민하다, 오랫동안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해오셨고 아이들도 좋아하시니 과자가게 일을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오케이해 주셨다고 한다. 이후 개점 시간이 되면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항상 먼저 내려오셔서 가게를 봐주시는데 아이들과 만나고 소통하며 다시 금세 밝아지셨다고 한다.

이외에도 코로나 전에는 댄스교실과 드럼서클 등 클래스를 통해 아이들과 지역주민, 입주자 모두 자유롭게 참여하며 함께 배우는 자리가 매주 마련되었다고 한다.  

‘지역주민과 교류하며 나답게 생활하는 주거공간’으로서 긴모쿠세이에 대한 개괄적 소개에 이어 이곳의 돌봄 원칙과 철학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주셨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스스로’

긴모쿠세이는 치매나 질환이 있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가급적 스스로 하도록 권장한다. 계속해서 신체를 움직이며 활력과 주체성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음식을 직접 만들어 드실 수 있는 분은 식사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드실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식사 시에도 휠체어를 사용하는 분이더라도 손을 움직일 수 있으면 가능한 한 스스로 받아오고 퇴식하실 수 있도록 이끌고 도와드린다. 주로 와병 상태로 생활하시던 분도 주변 분들을 보고 나도 내 힘으로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면서 잔존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상태가 호전된 예가 적지 않다고 한다.

긴모쿠세이의 식사시간. 입주 고령자들은 가능한 한 식사 배식도 스스로 한다

‘자신의 역할을 통한 보람’

긴모쿠세이는 입주자가 스스로 정한 역할을 통해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분은 과자가게를 봐주시고,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분은 현관 화단 잡초 관리를, 식사 준비를 돕고 싶은 분은 테이블 세팅을 함께 해 주신다. 

여기서 긴모쿠세이가 하는 역할은 하실 일을 강제로 정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시도록 살짝 도와드리는 것이다. 일례로 한 입주자분이 원예를 좋아하시던 것을 알고 현관 앞 화단에 잡초를 일부러 내버려 두었다. 예상대로 그분은 이를 지나치지 않고 잡초 제거가 필요하다고 알려주셨고, 너무 바빠 미처 돌보지 못했다고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선뜻 직접 해주시겠다고 나서주셨다. 이후로 화단 관리는 쭉 그분의 자발적 역할이 되었다. 고령자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하기보다 자신이 정한 역할로 주위에 기여함으로써 보람과 의미를 느끼는 것은 건강한 심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같은 접근에서 긴모쿠세이 직원과 입주자들은 인근 주민들과 함께하는 축제를 매년 한 번씩 준비한다. 보통 시설에서는 고령자를 즐겁게 하기 위한 축제가 대부분이지만 우리는 거꾸로 고령자분들이 지역 주민들을 대접하는 행사를 연다. 올해는 9월 중 개최 예정인데, 입주자분들은 부스를 지켜주시고 다과를 판매하시기도 한다. 지역 주민 참여도 활발해서, 과자가게 반값 할인 행사 시에는 줄이 길어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던 적도 있었다. 

긴모쿠세이와 입주 고령자분들이 지역주민을 대접하는 가을 축제

‘나다운 여생, 나다운 임종’

안전을 이유로 제한을 두기보다는 입주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술을 제한하기보다는 적당한 음주로 동료들과 친해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편이 건강하고 활력 있는 일상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자유롭고 나다운 여생을 지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종 또한 원하는 방식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연명치료 희망 여부 등 임종 관련 의향을 입주 시 당사자와 가족분들께 미리 여쭤보는데 대부분의 경우 연명치료는 원치 않으며 병원보다는 긴모쿠세이에서 임종을 맞이하길 원한다고 한다. 

한 번은 담배를 매우 좋아하셔서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흡연이 가능하면 좋겠단 의향을 가진 입주자가 계셨다고 한다. 이분은 산책 중 대퇴골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을 때도 수술을 거부하셨는데, 이유는 병원에서는 담배를 필 수 없어서였다. 임종을 준비하던 시점 가족과 함께 이분의 뜻을 주치의에게 전달했더니 처음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설명을 드리자 이내 곧 허락했고, 결국 평소 원하시던 대로 담배를 태우시다 임종을 맞이하실 수 있었다고 한다.

 ‘나다운 임종’을 맞이한 동료에게 긴모쿠세이 식구들은 함께 작별 인사를 전한다 

긴모쿠세이에서는 이렇게 임종을 맞이한 분들께 작별회를 해드린다. 사전에 약속을 따로 하지 않아도 입주자분들도 다들 내려오셔서 헌화하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인사해 주신다고 한다. 자택에서 가족에 둘러싸여 임종을 맞이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마지막인 듯하다. 함께 지내던 동료를 보내드리고 나면 임종 시 나도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다고 한다. 응급 상황으로 인해 평소 희망과 달리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경우도 생전 의사에 따라 긴모쿠세이에 돌아와 작별회를 해드리기도 한다. 이분들께는 이곳이 ‘집’인 셈이다.

이러한 긴모쿠세이의 철학과 돌봄 원칙은 ‘나라면 어떤 노후를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자유가 제한되고 정해진 룰대로 일방적 서비스가 제공되는 기존의 간호·요양 시설에서 근무하며 회의를 느꼈던 직원들은 긴모쿠세이에 와서 ‘내가 하고자 했던 간호는 바로 이런 것이었어!’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식사나 배변, 목욕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돌보는 대상을 바라보고 창의성을 발휘해 돌봄을 받는 이가 원하는 것을 의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진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고령자를 세심하게 배려한 시설과 밝고 유쾌한 기운이 가득한 긴모쿠세이의 내부 공간들을 안내해 주시면서 후모토 소장은 긴모쿠세이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고령자는 필요한 돌봄을 받는 가운데 자기다운 모습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생을 보내고, 요양사는 의미와 보람을 느끼며 그들이 원하는 돌봄을 제공하는 공간. 긴모쿠세이가 생각하는 간호와 돌봄, 그리고 이곳 고령자들의 ‘나다운 일상’을 만나고 나니, 나와 내 가족이 돌봄이 필요해질 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어떤 가능성과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과자가게를 지켜주시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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