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키즈, 낯선 세계를 상상하다

2022년 9월부터 나는 영주에서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다. 서울에서도 커뮤니티 기획 업무를 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주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이었기에 ‘관계’는 언제나 중요한 요소였다. 지역에서 살아본 적은 없었지만, 관계나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 여겼다. 하던 일도 비슷했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비슷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곧 이곳에서의 관계는 내가 알던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지속가능한 로컬을 위한 관계의 축적

지역에서 관계를 맺는 일이 쌓이고, 살아가는 방식이 변화가 생기고 나니, 내 생각의 기준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일하며, 그 안에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시간들을 지나며 나는 ‘성장’이라는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아파트 키즈라면 누구나 겪었을 평범한 성장기를 지나, 도시에서 일을 했던 나는, ‘성장’이라는 말은 당연히 ‘크고 넓은 세상의 추구’, ‘남들보다 빠른 변화’와 연결 지어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조금 다른 결의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는 부모 세대부터 쌓아온 신뢰를 지키는 일을 성장으로 여겼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상품이 지역의 평판에 좋은 영향을 주길 바라는 마음을 성장이라 말했다. 그런 감각은 겉보기에 정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형태의 성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역에서의 성장은 변화보다 ‘축적’을, 확장보다는 ‘지속’을 중요하게 여긴다. ‘얼마나 변화했는가’보다 ‘어떻게 깊어지는가’에 집중하는 마음. 나는 그 마음이 매력인 지역에서 새로운 의미의 성장을 배우며, 나만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이런 감각을 원동력 삼아, 저마다의 방식으로 로컬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영주를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오래된 자원을 활용한 브랜드를 운영하고, 또 누군가는 도시와는 다른 삶의 형태를 콘텐츠로 기록한다. 또 어떤 이는 나처럼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며,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이 모든 노력은 단순히 사람을 불러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와 삶의 방식이 축적되어 지역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나 역시 그 축적의 과정 속에서 오늘도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은 지금 ‘지역 소멸’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관계가 끊기고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지역에서, 그리고 우리 조직은 이 흐름 속에서 지역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단지 사람을 불러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에, 우리는 이 지역에서 사람들과 깊게 관계 맺고, 그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쌓아가는 데 진심을 다하고 있다. 나는 이 진심이 조용하지만 분명한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이곳에 내린 뿌리가 새로운 성장의 의미로, 그리고 로컬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자라나길 바란다.

글 | 우아영

임팩트스퀘어 매니저

경북 영주에 위치한 창업교류공간 ‘STAXX’에서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담당합니다.
커뮤니티가 가진 ‘연결의 힘’이 모든 가능성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결이 있다면,
서로에게 필요한 역량과 시너지는 충분히 일어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