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 노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편지가 나옵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채로 고민과 답장이 오가는 곳이죠.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소설과 달리 현실의 고민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고립·은둔을 생각하는 위기 청년의 규모가 최대 54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치료나 상담 등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5.6%에 그치고 있죠.

이렇게 우울한 현실 속에서 삼청동 돌담길 어딘가에 놓인 작은 우편함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누군가는 어제 고민을 넣고, 누군가는 오늘 그 고민에 답을 합니다. 한 통의 편지를 쓰기 위해 1시간 반을 들이고, 전국 110곳에서 매월 3천 통이 넘는 고민을 주고 받습니다. 8년 전, 대학생 한 명이 혼자 시작한 일은 현재 800명이 함께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AI가 3초 만에 답을 주는 시대에, 여전히 종이와 펜을 꺼내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 느린 속도로, 하지만 그 속도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 만날 사단법인 온기 조현식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현재 온기 우편함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편지를 주고받는 방식도 궁금해요.

지금은 전국에 약 110개의 온기 우편함이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최근에 많이 늘었어요. 편지는 일주일 단위로 수거하는데요. 각 지역에 계시는 우편함 담당 자원봉사자분들이 수거하셔서 저희 쪽에 등기로 보내주시죠. 

편지는 한 달에 보통 2,500통에서 3,000통 정도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 많이 늘어났어요. 저희 자원봉사자는 두 그룹이 있는데요. 한 그룹은 오프라인 공간에 오셔서 편지를 쓰는 분들이고, 다른 그룹은 재택으로 편지를 쓰시는 분들이에요. 총 800명 정도 계신데 약 600분 정도가 재택으로 편지를 써주고 계십니다. 아무래도 온기 우편함이 전국에 있고, 편지 쓰기는 어디서든 할 수 있는 활동이기 때문에 다양한 지역에서 참여하고 계십니다.

자원봉사자분들이 다들 열심히 참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서 어떤 마음으로 쓰시는지 여쭤봤는데요. 오히려 답장을 쓰면서 “나에게 쓰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누군가한테 쓰는 거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내가 위로받고 싶었던,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간다면 내가 이런 위로를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쓰니까 편지를 쓰면서 위로가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800명이나 되는 온기 우체부를 어떻게 교육하고 관리하시나요?

지원을 기반으로 선발하는 게 기본 구조입니다. 지원서 제출 후 선발이 되시면 온기 내부적으로 교육과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있어요. 이 교육과정은 꼭 이수하셔야 하는데요. 보통은 저희가 8년 동안 활동하면서 쌓인 원칙들이나 가이드를 드리는 편이에요. 어떤 식으로 답장을 쓰시는 게 맞는지, 어떤 표현은 지양하는 게 좋은지 이런 것들은 공유해요. 예를 들면 “무엇을 하지 마세요”, “00이 정답이니, 이렇게 하세요”같이 명령조는 쓰지 않도록 해요. 초창기에 강요받는 느낌이 이었다는 피드백을 종종 받았거든요. 그래서 경험에 기반한 솔루션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작성해요.

또 “누구나 하는 흔한 고민이다”, “너만 힘든 게 아니야” 이런 식으로 고민을 가볍게 치부하는 표현도 쓰지 않으려고 해요.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고민도 처한 상황에 따라 크게 느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걸 가볍게 여기는 표현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가장 외로운 곳을 찾아 연결하는 온기

최근 소방서, 자립준비청년센터 같은 특별한 곳에도 우편함을 설치하고 계시는데요.

온기를 처음 만들 때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하나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우편함이 일상에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짜 가장 외로울 수 있는 곳, 어쩌면 혼자일 수밖에 없는 곳에 우편함을 설치하고 싶다는 생각이었거든요. 소방서 같은 경우는 소방공무원분들이 상담을 신청하는 게 굉장한 심리적 허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장벽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상담'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아요. 혼자서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계시다면, 비슷한 경험을 한 누군가가 위로를 전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활동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200개 설치가 목표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가늠하신 숫자인가요?

200개 정도 하면 저희가 연간 거의 5만 통 정도를 답장을 쓰게 되더라고요. 5만 명에게 매년 계속 답장이 가는 거죠. 그 정도 수치라면 5만 명이 알고 있는 사람들까지 다 계산해 봤을 때 정말 많이 알려지겠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200개면 전국적 단위로 설치가 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온기 우편함의 존재를 아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는 공유의 단계로 넘어간다고 봤거든요. 저희가 하고 있는 이 온기 우편함이라는 모델이 정말 의미 있고 지속가능한 일이라는 걸 검증하고, 그 검증된 모델을 잘 만들어서 공유하는 게 저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 온기 우편함을 통해 만들고 싶은 사회의 모습은 어떤 건가요?

누구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나누는 게 당연한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가 평가의 말들이나 차가운 말들을 많이 듣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넌 이게 부족하니까", "넌 이걸 더 해야 돼", "너는 왜 그것밖에 못해" 이런 얘기들을 많이 듣게 되는데, 사실 우리한테 진짜 필요한 말은 "괜찮다", "그냥 너 자체로 충분히 괜찮고 잘할 수 있어", "나도 그랬던 적이 있으니까 같이 힘내보자" 그런 얘기거든요.

온기 우편함이 멀리 봤을 때는 WHO 같은 국제기구와 함께 해서 전 세계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요. 우리가 운영하지 않더라도 이게 정신건강을 예방하는 솔루션이라고 해서, 해외에 우편함이 설치된다면 그게 또 사회에 확산되는 거잖아요. 정신건강을 예방하는 하나의 플랫폼이 생기는 거죠. 고민을 쓰는 사람이 있고 답장을 쓰는 사람이 있고, 우편함이라는 모델이 있음으로 해서 전 세계에서 서로 사람과 사람 간에 연결되는 그 과정을 만들고 싶어요.

온기 우체부의 목소리 - 어쩌면 10년 전의 내가 듣고 싶었던 말

행복나눔재단에서는 온기와 함께 '청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렌즈(청마들렌)'라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청마들렌으로 활동하고 계신 온기 우체부의 이야기를 함께 공유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청마들렌 참여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행복나눔재단에서 근무하며, 청마들렌 사이드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박형규 매니저입니다. 저는 재단에서 임팩트투자, 회계, 자금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사업팀 담당자 분들에 비해 대상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아서 늘 아쉬웠어요. 그래서 이번 기회가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오늘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이 본인의 고민을 속 시원히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잖아요.  저 또한 스무살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었는데, 그 때마다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응원이나 위로의 한 마디 받을 수 있었다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왔거든요. 특히 요즘같이 키보드나 스마트폰 패드로만 대화하는 시대에 사연을 보내는 온기도, 답장하는 우체부도 직접 손편지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재단의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는 분들이 모여서 활동하고 계시죠. 연령대나 성별, 업무에 따라서 고민을 해결하는 방식이 다른지 궁금해요.

맞아요. 현재 약 10명의 매니저님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데요. 연령대도 성별도 업무도 전부 달라서 누가 어떤 사연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답장하셨는지 공유하는 시간이 청마들렌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활동을 거듭할수록 청년들의 고민 사연은 크게 4종류로 나뉜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느껴졌는데요. 진로, 취업, 연애, 인간관계로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고민에 좀 더 적합하게 답장해 줄 수 있는 분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실제로 사연 내에 ‘사회초년생 선배님의 답장을 받고 싶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신 40대 남성 선배님의 답장을 원한다’ 고 언급한 경우도 있었고, 워킹맘을 준비하면서 겪는 고민 사연이나 군입대를 앞두고 조언이 필요하다는 편지도 있었어요. 이런 사연들은 아무래도 답 할 수 있는 분들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었고 실제로 적절한 담당자가 답장을 작성하곤 했습니다. 

그동안 써드린 답장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가 있나요? 어떤 고민이었고, 어떤 마음으로 답장을 쓰셨는지, 그리고 왜 기억에 남는지 얘기해 주세요.

지금까지 총 8번의 답장을 작성했는데 대부분 취업이나 인간관계, 특히 가족과 관련된 고민이 많았어요. 과도하게 개인적인 내용을 제외하고 기억에 남는 사연 하나 공유해 드리자면...

수도권 외 지역에 거주하는 한 20대 후반 남성 청년의 사연이었는데 본인의 전공과 관련 없는 진로를 선택해야 해서 고민이라는 사연이었습니다. 또 그동안 독립 경험이 없었는데 취업을 위해 수도권에 홀로 정착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본인 앞에 놓인 결정이 너무 큰 두려움과 걱정이라는 내용이었고 저 또한 10년 전 취업과 독립의 결정을 내렸던 경험이 있어서 답장하게 되었습니다.

무조건적인 응원이나 다 잘 될 거다, 원래 처음엔 그렇다는 내용으로 답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가급적 자세한 경험담과, 공감과 조언 사이의 어느 지점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먼저 온기님이 하고 싶었던 일이 맞는지,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해도 좋을 일이 맞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좋겠다고 적었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도 간혹 있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그 일을 할 수 있는 명확한 특장점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답장했습니다.

특히나 타지에서 독립한 사회초년생에게는 제가 처음 독립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리며 답장했어요. 사회 초년생 시절의 저는 동기들과 비슷한 동네에 모여 살며 새로운 공동체를 겪으며 외로움을 해결했거든요. 혹시 제 답장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결정을 내렸더라도 처음 1-2년 정도는 어떤 일이든 해 볼 수 있으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어쩌면 10년 전의 제가 듣고 싶었던 말 같아서 더더욱 문장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았던 답장이었습니다.

📖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