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모인테르 박재윤·오유현 대표 기고 🕒 오늘의 키워드 #다문화/이주민 #비영리/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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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노트
낯선 나라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던 순간,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거예요. 메뉴판을 이해하지 못해 대충 손가락으로 아무거나 가리켜본 경험, 길을 잃었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뭐라고 물어야 할지 몰라 발걸음만 돌렸던 기억. 다행히 여행은 며칠 지나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익숙한 언어의 세계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만약 그 답답함이 며칠이 아니라 몇 년째 계속된다면, 그것도 여행이 아니라 병원 진료실이나 행정복지센터, 경찰서 같은 곳에서라면 어떨까요.
호모인테르는 10년 남짓 바로 그런 순간 속에 있는 이주민과 난민 곁을 지켜온 단체입니다.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권리에 접근할 기회를 잃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몸으로 배워온 셈이죠. 그 답을 이어지는 글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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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활동이 연구가 되고, 연구가 다시 활동이 되기까지
호모인테르는 처음부터 완성된 답이나 정해진 사업 모델을 가지고 시작한 조직이 아니었다. 출발점은 연구실에서 세운 가설이 아니라, 현장에서 반복해서 마주한 경험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주민과 난민이 병원과 학교,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에서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모습을 수없이 만났다. 현장에서 점점 분명해진 사실은 하나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가 다른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권리에 접근할 기회를 잃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그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연구로 이어졌다. 2017년 서울시NPO지원센터 연구지원사업인 '활력향연' 1기에 참여하면서, 현장에서 발견한 질문을 함께 탐구하고 실천하는 호모인테르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후 활동과 연구를 이어갈수록 통역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와 접근성, 정보와 권력의 불균형, 통역인의 돌봄, 그리고 제도의 공백까지 연결된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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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력향연 1기로 ‘호모인테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함께하며 시작을 한 시간 | ⓒ호모인테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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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 과정에서 마주한 세 가지 질문을 따라간다. 통역은 누가 하는가, 그 자리에 설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 통역인은 누가 돌보는가. 이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공공서비스통역은 단순히 언어를 번역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권리, 제도와 공동체를 연결하는 사회적 기반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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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의 사각지대에 초대되었다 ― 첫 번째 질문, “통역은 누가 하나요?”
호모인테르가 공공서비스통역 교육을 진행할 때 참여자들에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 있다. ‘통역은 누가 하나요?’ 이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잠시 당황한다. 너무 쉬운 질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교육 현장에서 돌아온 답도 거의 한결같았다.
“통역사가 합니다.”
물론 틀린 답은 아니다. 통역사가 통역을 한다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현장에 들어가 보니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통역'과 실제 이주민과 난민이 경험하는 '통역'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공서비스통역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흔히 '통역'이라고 하면 국제회의장의 동시통역 부스나 정상회담을 떠올린다. 이러한 회의통역(conference interpreting)에서는 발화자와 청자의 역할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된다. 통역사는 발화자의 메시지를 다른 언어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하며, 자신의 존재는 가능한 한 드러내지 않는다. 통역사가 부스 안에서 일하고, 청중은 얼굴보다 목소리만 듣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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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인테르에서 운영하는 난민통역캠프 현장 | ⓒ호모인테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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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호모인테르가 현장에서 만난 통역은 전혀 다른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병원 진료실, 행정복지센터 창구, 출입국기관, 경찰서, 학교 상담실. 이주민이나 난민이 의료진, 공무원, 교사와 마주 앉아 자신의 삶을 설명해야 하는 자리였다. 이러한 통역을 국제적으로는 공공서비스통역(Public Service Interpreting, PSI) 또는 지역사회통역(Community Interpreting)이라고 부른다. 국제표준화기구(ISO) 역시 공공서비스통역을 회의통역과 구분되는 독립적인 전문 영역으로 다루고 있으며, 필요한 역량과 운영 원칙을 별도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¹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통역'이지만, 두 영역은 대화의 구조부터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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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e (2007), Pöchhacker (2016), ISO 13611:2024를 바탕으로 저자 재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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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차이는 공공서비스통역이 대면으로, 그것도 삼자 간의 대화(trialogue)로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의료진이나 공무원과 이주민 당사자 사이에 함께 앉아, 세 사람이 하나의 대화를 만들어간다. 회의통역에서 통역사가 일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에 가깝다면, 공공서비스통역의 통역인은 정보 전달자인 동시에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는 대화의 한 축이 된다. 통역하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때로는 당사자보다 먼저 놀라거나 웃으며 다른 발화자들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두 사람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정보의 수준과 제도적 권한을 가진 세 사람이 하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행정복지센터에서 아동수당을 신청하는 한 이주민 여성을 떠올려 보자. 공무원은 자신에게 익숙한 절차를 빠르게 설명하지만, 신청자는 왜 이 서류가 필요한지 계속 묻는다.
이때 통역인은 단순히 말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무원에게 조금 천천히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고, 신청자의 반복되는 질문이 이해력 부족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와 절차를 확인하려는 과정임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 순간 통역인은 단어만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대화의 속도와 리듬, 참여의 기회를 이어주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공공서비스통역은 통역인 한 사람의 역량만으로 잘 이루어질 수 없다. 공무원과 의료진도 통역이 함께하는 대화의 방식을 이해해야 하고, 이주민 당사자 역시 통역인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번에 통역할 수 있는 길이로 말하고, 통역인이 아니라 당사자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며, 전문용어를 쉽게 풀어 설명하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질 때 비로소 삼자 대화는 제대로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오해를 자주 만났다. 많은 사람들은 “두 언어를 할 줄 아니까 통역도 잘하겠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중언어 사용자(bilingual)와 공공서비스통역인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두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통역의 출발점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좋은 통역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공서비스통역에는 언어 능력뿐 아니라 윤리적 판단, 문화적 이해, 관계를 조율하는 능력,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상호문화적 감수성이 함께 요구된다.
회의통역이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에 가깝다면, 공공서비스통역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권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대화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호모인테르는 공공서비스통역을 “통역을 위한 통역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통역”이라고 이야기한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게 조금씩 넓어졌다. 통역은 분명 통역인이 한다. 그러나 좋은 공공서비스통역은 통역인 혼자 만들 수 없다. 공공서비스 제공자와 통역인, 이주민 당사자가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함께 대화에 참여할 때, 비로소 통역은 단순한 언어의 번역을 넘어 한 사람의 권리와 연결되는 소통이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통역인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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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 설 사람은, 애초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 두 번째 질문, "그 통역인은 어디에 있나요?"
첫 번째 질문에 답하고 나자 또 다른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공서비스통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수록, 정작 그 역할을 맡을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2014년 한국에 들어온 이후, 프랑스에서부터 이어온 난민 지원 경험과 심리사회적 지원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국내 여러 난민지원단체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가장 관심을 두었던 것은 심리지원이었지만, 현장에서 가장 먼저 요청받은 것은 상담이 아니라 언어였다. 특히 아프리카 출신 난민 가운데는 프랑스어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을 위한 통역은 늘 부족했다. 처음에는 법률 상담이나 난민 인정 절차를 위한 통역 요청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역은 난민지원단체 안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병원과 학교, 행정기관, 부동산 등 이주민의 일상 전반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어 장벽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삶 곳곳에 놓여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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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의 세계를 여행하는 모든이들을 위한 소통의 장, 호모인테르 공공서비스통역 교육 워크숍² | ⓒUNHC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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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인테르의 공공서비스통역 교육 워크숍에서는 현직 통역인들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있다. 그중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늦은 밤, 출산을 앞둔 한 이주여성이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산모의 언어를 아는 의료진도, 대기 중인 통역인도 없었다. 결국 지역 이주민 공동체를 통해 가까스로 전화 통역이 연결되었고, 한 통역인이 밤새 의료진과 산모 사이를 오가며 출산 과정을 함께했다. 의료 용어에 대한 사전 교육도, 응급 상황을 대비한 훈련도, 통역을 마친 뒤 경험을 돌아보거나 마음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그가 그 자리에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 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통역인은 워크숍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한 생명이 무사히 태어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지금도 큰 보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개인의 선의와 책임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서비스통역인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안전하게 활동하며,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경험을 넘어 우리 사회 공공서비스통역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통역인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소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인 공공서비스통역인으로 성장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구조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었다. 통역 역량을 검증하고 공공서비스에 필요한 윤리와 절차를 배우는 교육,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지원과 보상 체계는 여전히 부족했다. 결국 이것은 단순한 인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 인권(language rights)의 문제였다.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의료·교육·행정·사법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과 권리, 삶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통로가 막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현실 앞에서 호모인테르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필요한 순간마다 통역인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을 연결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연결이 반복 가능하고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호모인테르는 공공서비스통역 교육과 연구를 시작했다. 언어 역량을 가진 이주배경 인력을 발굴하고, 통역 윤리와 공공서비스에 대한 이해, 실제 사례를 함께 교육하며 '우연히 그 자리에 선 사람'이 아니라 '준비된 공공서비스통역인'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통역인을 한 명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직무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언어 때문에 자신의 권리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사회와 사람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다리를 놓는 일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모든 공공서비스에는 두 가지 질문이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 서비스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의 언어로 이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가?" 하지만 통역인을 교육하고 현장에 세우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질문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통역이 필요한 사람의 권리에는 주목했지만, 그들의 가장 위태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통역인의 경험은 충분히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렇게 세 번째 질문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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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를 지키던 사람도, 함께 무너질 수 있었다 ― 세 번째 질문, "그렇다면 통역인은 누가 돌보나요?"
호모인테르를 소개할 때 사람들은 자주 ‘돕는 이들을 돕는 단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돕는 사람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공공서비스통역인에게도 심리·정서적 지원과 자기돌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다. 그것 역시 호모인테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션 가운데 하나다.
공공서비스통역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대부분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취약한 순간과 맞닿아 있다. 병원에서는 생명과 건강을, 경찰과 법원에서는 안전과 권리를, 난민 심사에서는 체류와 추방 여부를, 상담실에서는 폭력과 상실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통역인은 이러한 이야기를 단순히 듣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두려움과 분노, 절망과 불안을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반복해서 마주하고, 그 감정을 자신의 언어를 통해 다시 전달해야 하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유엔난민기구는 난민 절차 통역인을 위한 자료에서 통역인이 완전히 중립적이고 보이지 않는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나의 허구라고 지적한다.("It is a fiction that I am neutral and invisible.")³ 통역인은 중립성과 정확성을 지켜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투명한 통로로만 존재할 수 없다. 의료진과 환자, 공무원과 민원인, 면접관과 난민 신청자처럼 정보와 권한이 비대칭적인 관계 한가운데에서 대화가 무너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민 인정 심사를 떠올려 보자. 신청자는 자신이 겪은 박해와 폭력의 경험을 말해야 하지만, 트라우마로 인해 사건의 순서를 일관되게 설명하지 못하거나 기억이 파편적으로 떠오를 수 있다. 반면 면접관은 정해진 절차와 질문에 따라 심사를 진행한다. 통역인은 신청자의 말을 임의로 정리하거나 보충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신청자가 자신의 말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발언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야 할 때도 있다. 한 문장을 어떻게 옮기느냐에 따라 다음 질문의 방향이 달라지고,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통역인은 매 순간 정확성과 중립성, 그리고 공정한 의사소통 사이에서 역할의 경계를 판단한다.
이러한 긴장은 통역인의 마음에도 흔적을 남긴다. 난민 인정 심사, 성폭력 피해 진술, 응급실에서 전해지는 사고 소식, 아동학대 상담과 같은 현장에서 통역인은 타인의 가장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반복해서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한다. 당사자의 울음과 분노, 공포를 1인칭으로 옮기는 동안 그 감정은 통역인의 몸과 마음을 한 번 더 통과한다.
이처럼 직접 외상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타인의 외상 경험을 반복적으로 듣고 전달하면서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을 이차 외상성 스트레스(Secondary Traumatic Stress)라고 한다. 타인의 고통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세계와 사람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지는 경험은 대리 외상(Vicarious Trauma)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상담사와 사회복지사, 의료인과 같은 조력자를 대상으로는 비교적 널리 논의되어 왔지만, 공공서비스통역인은 오랫동안 이러한 논의의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좋은 통역은 정확한 언어 능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통역인이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어려운 경험을 안전하게 정리하며, 건강하게 현장에 머물 수 있어야 통역을 이용하는 당사자 역시 더 안전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 통역인을 돌보는 일은 개인을 위한 부가적인 복지가 아니라 통역의 정확성과 지속가능성, 그리고 당사자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호모인테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주여성상담센터와 협력해 공공서비스통역인을 위한 심리사회적 지원과 수퍼비전 세션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이 세션은 통역인의 수행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통역 과정에서 겪은 감정과 윤리적 딜레마를 안전하게 돌아보고 동료들과 경험을 나누는 공간이었다. 통역 전에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통역 중에는 감정과 역할의 경계를 어떻게 유지할지, 통역 후에는 남아 있는 감정과 긴장을 어떻게 정리할지를 함께 살펴보았다. 호모인테르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통역인과 함께 일하는 난민·이주민 지원기관과 상담기관에도 통역인을 위한 심리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계속 알려오고 있다.
통역인을 돌보는 문제를 살펴보다 보니, 우리의 시야는 다시 그 너머의 사각지대로 확장되었다. 재난 현장에서는 몇 초의 지연이나 작은 오역이 생명과 안전에 직결될 수 있다. 대피 안내와 응급 의료 처치, 실종자 확인과 긴급 구호 정보가 여러 언어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관계망과 정보 접근성이 부족한 이주민은 재난 속에서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재난통역에는 언어 능력뿐 아니라 위기 의사소통, 심리적 안정, 여러 기관과 협력하는 역량까지 요구된다.
아동을 둘러싼 통역 역시 우리가 충분히 바라보지 못했던 영역이었다. 여기에는 성인 통역인이 아동의 말을 전달하는 아동을 위한 통역과,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이 부모를 대신해 통역하는 아동언어중개(Child Language Brokering)라는 두 가지 현실이 함께 존재한다.
아동을 위한 통역에서는 아동의 발달 단계에 맞는 표현을 사용하고, 질문을 충분히 이해했는지 확인하며, 낯선 어른들과 제도 앞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의료와 상담, 아동학대 조사에서는 정확한 전달만큼이나 아동이 자신의 목소리를 안전하게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로 아동이 부모의 통역을 맡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병원이나 학교, 행정기관에서 한국어에 익숙한 아이가 부모를 대신해 설명을 듣고 답한다. 이러한 경험은 아동의 언어 능력과 문화적 역량, 책임감을 키우기도 하지만, 질병과 경제적 문제, 체류자격과 가족 갈등처럼 발달 단계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내용을 떠맡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아동의 통역 경험을 무조건 부정하거나 ‘가족을 돕는 기특한 일’로만 미화해서는 안 된다. 아동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s of the child)을 중심에 두고, 권리 보호와 정서적 안녕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호모인테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글로벌컴팩트에 굿프랙티스로 등록되어 있는 난민아동들과 함께 아동통역을 위한 세션을 진행했고, 이후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아동통역의 이해를 위한 실천적 가이드북』을 제작했다. 이 작업은 국내에서 거의 가시화되지 않았던 아동언어중개의 현실을 드러내고, 부모와 교사, 기관 실무자와 통역인이 아동의 보호와 권리, 그리고 주체성을 함께 고려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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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통역의 이해를 위한 실천적 가이드북 | ⓒ호모인테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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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민은 현재의 활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호모인테르는 올해 이주배경아동청소년센터 다빛과 협력하여 B-Link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며,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이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긍정적인 자원으로 바라보며 상호문화감수성을 키워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언어와 문화적 경험을 오직 부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과 역량을 구성하는 자원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다. 동시에 아동이 어른의 책임을 대신 떠안아야 하는 경우로만 남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한 사람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호모인테르의 활동은 언제나 하나의 질문이 다음 질문을 불러오는 과정이었다. 공공서비스통역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통역인을 길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통역인을 현장에 연결하면서 그들을 돌봐야 한다는 필요를 발견했다. 그리고 통역인의 경험을 들여다보다 보니 이주배경 아동과 재난 상황, 지역사회 전체의 언어 접근성까지 시야가 넓어졌다. 질문에 답해가는 동안 우리의 실천은 언어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관계로, 관계에서 공동체로 확장되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점점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좋은 통역은 한 명의 헌신적인 통역인에게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통역하는 사람과 통역을 이용하는 사람 모두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사회적 구조에서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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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며: 지금도 계속되는 다음 현실
세 가지 현실을 하나씩 마주하는 동안 호모인테르의 문제의식도 조금씩 넓어졌다. 처음에는 ‘누가 통역을 하는가’라는 역할의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곧 ‘누가 그 자리에 설 수 있는가’라는 양성과 구조의 문제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그 사람이 어떻게 안전하게 활동을 지속하며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돌봄과 지속가능한 생태계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이것이 호모인테르가 지난 시간 동안 걸어온 방식이었다. 완성된 해법을 미리 세워두고 현장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현실을 만날 때마다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다음 연구와 실천의 출발점으로 삼아왔다. 하나의 질문에 답을 찾으면 또 다른 현실이 모습을 드러났고, 활동과 연구는 그렇게 서로를 비추며 조금씩 다음 길을 만들어 왔다.
공공서비스통역 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종종 참가자들이 이렇게 묻는다. "이런 일은 국가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질문에는 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지금은 제도가 아직 닿지 않는 빈자리를 호모인테르가 함께 메우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농담처럼 시작된 대화는 이내 진지해진다. 언어 때문에 누구도 의료와 교육, 행정과 사법 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어느 한 사람이나 한 단체의 헌신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공공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 제도가 충분히 닿지 않는 현실 속에서 누군가는 그 공백을 메우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를 잇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
이 글은 통역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한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설명하고 이해하며 공동체와 연결되는 방식이다. 그래서 공공서비스통역은 사람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는 사회적 기반이며, 통역인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잇는 소중한 연결자다.
좋은 변화는 거창한 해답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안에서 발견한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려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호모인테르에게도 아직 만나야 할 다음 현실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우리는 그 질문들을 외면하기보다, 현장에서 배우고 연구하며 사람들과 함께 답을 만들어갈 것이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소통을 향한 우리의 질문과 실천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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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ISO 13611:2024, Community interpreting — Requirements and recommendations; Hale, S. (2007). Community Interpreting; Pöchhacker, F. (2016). Introducing Interpreting Studies (2nd ed.). Routledge.
³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UNHCR). Handbook for Interpreters in Asylum Procedures. Geneva: UNHCR, 2022. 난민 인정 절차에서 통역인은 단순히 '중립적이고 보이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절차의 공정성과 의사소통을 함께 형성하는 행위자임을 강조한다.
⁵ B-Link 프로그램: 아동통역 경험이 있는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이해하고, 건강한 경계와 상호문화적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호모인테르가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B’에는 나답게 존재하는 ‘Be’와 아동통역의 원칙 ‘FAIR-B’의 의미를 담았으며, ‘Link’는 자신과 타인,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건강하게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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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토크 독자 의견함
✏️ 누리안심다리라는 단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활동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심 갖고 응원하겠습니다!
💬 저도 이번 인터뷰를 통해 가상관계중독이라는 현상도 알게 되었고, 누리안심다리가 하는 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어요. 구독자 님께서 누리안심다리의 진심을 알아봐주셔서 참 기뻐요!
by. 에디터 성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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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Talk | 사회혁신가 인터뷰와 사회혁신 모델/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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