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리더는 월드비전의 사내 벤처 ‘베이크’를 이끌며 기부 시장 트렌드와 후원자 니즈에 맞는 비영리기관의 변화를 꿈꾼다. 개인이 직접 캠페인을 만들고 참여하는 개방형 플랫폼인 베이크는 ‘20년 10월 베타 서비스 오픈 이후 5천여 참여 건을 달성했다. 베이크를 통한 실험이 NGO의 변화에서 나아가 개인의 참여 확대와 해결 방법의 진화, 궁극적으로 누구나 함께 하는 사회문제 해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Q. 베이크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A. 2017년 월드비전 사내 워크숍이 발단이었다. 시장 환경이 크게 변화하며 비영리기관의 투명성과 후원자의 신뢰에 대한 고민이 많던 시기였다. 사내 스터디를 통해 우리의 후원자가 누구이며 그들의 니즈는 무엇인지에 주목했다. 단순 기부에만 그치기보다 주체적 역할을 하며 관계와 경험을 통한 회복을 원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SNS 발달과 블록체인 등 기술 변화는 이를 가능케하는 기반이 되었다. 직접 관심있는 사회 문제를 주제로 활동을 만들고 실행해보며 이슈 중심으로 사람과 역할이 모여 프로젝트가 생겨나고 사라지기도 하는 생애주기를 경험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기획하고 프로토타입을 테스팅 해보며 현재의 베이크가 탄생하게 되었다. 베이크는 글로벌 기술전문기업인 캔랩, 위브와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개발, 운영되고 있다.

Q.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며, 어떻게 활동이 이루어지나?

A.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 중 그저 지켜보기 보다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분들 중심으로 참여가 이루어진다. 초등학생부터 직업이 있는 일반인까지 연령대도 다양한데, 주로 10대와 20대가 메인이기는 하다. 요즘의 MZ세대는 더 힘든 상황이 오기 전에 뭐라도 해야한다는 문제 인식과 책임감이 큰 것 같다.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누구나가 모금이나 자원봉사, 챌린지 등 다양한 캠페인을 기획하고 참여할 수 있다. 베이크에서는 이를 ‘소셜 액션’이라고 부른다. 액션 이름을 정하고 간단한 몇 가지 사항을 설정해 올리면 공감하는 사람들이 참여해 의견을 나누고, 투표를 하고, 함께 실행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형태로 활동이 이루어진다. 일상적 습관이나 행동을 개선하는 캠페인 성격의 소셜 액션도 있고 직접 후원 사업을 기획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들이 상호 연결되어 발전하는 양상이 발견되기도 한다.

Q. 타 습관 형성 플랫폼이나 기부 플랫폼과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A. 네*버 해*빈, 카카* 가치*치 등과 비교한다면 가장 큰 차이는 ‘역할의 차이’일 것이다. 베이크에서는 단순한 금전적 기여뿐 아니라, 역할의 방식과 수준을 내가 결정하고 선택하여 참여할 수 있다. 챌린*스 등 습관 앱과 비교 시, 해당 서비스가 개인의 자기 개발에 집중한다면, 베이크는 내가 아닌 타인의 어려움 또는 사회문제와 관련해 나의 습관과 행동을 바꾸는 액션이라는 점에서 그 목적에 가장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베이크에 올라온 가드닝이나 러닝 액션의 경우, 개인적 취미와 건강을 위한 활동이라기보다, 환경 문제나 난민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에 동참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Q. 서비스 운영이나 활성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A. 기부나 사회 변화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먼저 나서서 액션을 만들고 제안하는 적극적인 참여자를 단기간에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선 자발적으로 들어온 보석 같은 분들의 활동이 잘 전개되도록 돕는 것에 집중했다. 하나의 액션이 진척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된 액션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일단 가볍게 참여해보며 ‘해보니 어렵지 않네, 나도 한 번 만들어 봐야겠다’고 마음 먹는 분들이 늘어날 수 있도록 17가지 UN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중심으로 쉽고 재미있는 기획 액션을 마련하기도 한다. 참여형 캠페인에 대한 수요가 있는 소셜벤처나 비영리기관들이 베이크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협력을 논의중이기도 하다.

Q. 재미있는 액션 사례를 한 두 개 소개한다면?

A. 세계 물의 날을 맞아 진행됐던 <샤워 5분 컷 챌린지>가 있다. 샤워 시간 1분을 줄일 때 몇 리터의 물을 아낄 수 있는지 확인하며 물의 소중함과 물부족 지역의 고충을 환기하는 액션이었다. 각자 샤워 시간을 재서 스탑워치 사진을 인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참여자들은 1분 길이 음악을 틀거나 올인원 샤워워시 사용 등 팁을 공유하고 축하와 응원 메시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챌린지 종료 후 총 몇 리터를 아꼈는지 확인하고, 아프리카 아이 한 명이 얼마 동안 쓸 수 있는 물의 양인지 체감함으로써 다수의 인식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샤워 5분 컷 챌린지]

가정 밖 청소년 생리대 지원 캠페인 <월간언니>도 참여자의 다양한 역할과 의미 있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던 대표적 액션 사례다. 부모의 학대 등 여러 이유로 쉼터에 머물고 있는 국내 여아에게 생리대 키트를 지원하는 캠페인으로, 만원 이상 기부자에게 ‘월간언니’라는 역할과 의사결정권을 부여했다. 단순히 금전적 기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월간언니> 클럽 가입자가 되어 투표와 의견 교환을 통해 지원 키트를 직접 구성하고 아이들을 응원하며 적극적인 참여와 책임을 경험하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참여자 각각에게 권한이 부여되고 모든 과정이 기록되어 의사결정과 펀딩, 지출 내역 모두 투명하게 공개되었다. 기부 방식과 내용 결정에 직접 참여하고, 최종 전달과 피드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확인한 ‘월간언니’들은 효능감과 뿌듯함을 느끼며 더 좋은 액션의 방법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월간언니’ 액션]

Q.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배경과 이에 대한 사용자의 반응이 궁금하다.

A. 블록체인 기술 적용의 이점은 참여자 개인이 부여된 권한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점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신뢰, 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분산된 의사결정 권한이 참여자 각각에 자동 부여되어 이들의 참여와 승인이 있어야 진행이 가능한 구조가 마련된다. 또한 기획 단계부터 진행, 결과 공유, 평가 과정까지 투명하게 기록되어 모든 참여자가 직접 모니터링 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한 번 기록되면 임의 변경할 수 없기에 신뢰와 투명성이 담보되는 것이다. <월간언니>의 예와 같이 1만원 이상 후원하여 자동 임명된 ‘월간언니’가 사업 계획을 승인해야 집행이 가능하고, 이들은 언제든 과정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각 액션 별로 블록체인 투표권과 후원금(사업비)와 동일 효력을 가지는 토큰을 생성하여 의사결정 참여와 집행 기록 확인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액션 종료 후에는 참여자에게 블록체인 기반의 배지를 증정하기도 한다. 

결국 ‘베이커(Vaker)’들은 비영리단체의 신뢰도나 기부금의 효용을 의심하는 대신, 후원 과정을 함께 만들고 참여하며 효능감과 책임감, 행동의 동기를 강화시키고 더 효과적인 문제 개선 방법을 찾게 되는데, 이는 베이크에 심어 놓은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가능한 부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Q. 현재 월드비전의 사내 벤처로 운영되고 있는데, 향후 운영 방향은?

A. 현재 프로젝트 형태로 운영되고 있지만 조만간 법인 설립과 스핀오프를 계획 중이다. 이를 위해 베이크의 독자적 생존을 위한 수익모델을 적극적으로 테스트하고 있다. 참여형 캠페인과 커뮤니티 빌딩을 고민하는 비영리 기관, 기업들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SaaS (Software as a Service) 모델을 고려하고 있다. 이 외에도 소셜 액션 참여자들의 활동 증명서를 블록체인에 기반한 디지털 인증서로 발행하는 것도 시장 니즈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사용자 확보와 플랫폼 활성화가 우선되어야 하기에 파트너들과 다양한 실험을 위한 협력과 지원을 확대하고, 홍보도 적극적으로 할 계획이다.

Q. 베이크의 올해 계획과 향후 1년 후, 2년 후 목표가 있다면?

A. 그 동안 베타 버전 개발과 테스팅,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는데 주력하느라 대중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베이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베이커’와 액션의 좋은 컨텐츠가 사회혁신 고관여층 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도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SNS 홍보와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플랫폼 활성화를 위해 베이크에 모인 분들 간 연결고리를 더 끈끈하게 하는 것도 중요해서, 오프라인 모임도 한달에 한 번 열고 있다. 액션과 관계된 활동의 모임뿐 아니라 루프탑 파티 등 네트워킹을 위한 모임도 개최한다.

[베이크 오프라인 모임 ‘우유갑 카드지갑 DIY’]

홍보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사용자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베이크에서의 경험이 너무 좋다’라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UX/UI를 개선해나갈 계획이다. 참여자 주도의 다양한 캠페인과 후원 활동이 모이다 보면 비영리 시장을 키우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5천이 넘는 참여 건수와 순 사용자 2천명을 달성했는데 향후 1년 내 1만명 사용자 확보가 목표이다. 2년 후에는 누군가 해결하고 싶은 사회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베이크를 떠올릴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모든 개인이 ‘베이크와 함께 가치를 베이킹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글ㅣ김지선